2013년 2월 13일 수요일

노인과 오케스트라(on old person with orchestra)


연세희 프로필
1940년 충북 청주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최우수상 수상
아세아 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일본)
한국미술문화대상전 초대출품
미국 Homestead Art Gallery 초대전
대한민국 사회교육문화상 수상
서울미술제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출품(1995-2000)
독일베를린 시장 초대전(1999)
세계한의학 박람회 초대출품(코엑스) (1999.2000(2회))
중국 심양 국제미술박람회 초대전(2008)
홍콩 아트페어 초대출품(2008)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한인회 초대전(1984)
중국 베이징올림픽기념 초대전(2008)
중국 북경 T&G Gallery와
제일성국제회의 전람센터 동시 초대전
중국 베이징 아트살롱 2008초대전(2008)
미국 뉴욕 Korea Art Center와
뉴욕 Flushing open space Gallery 동시 초대전
인사동 이즈 Gallery 풍속화 ‘어제’와 ‘오늘’전(2009)
한국 미술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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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0대 늦은 나이에 화단에 데뷔했다. 화가가 되기 전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충북 청주태생. 한국배우전문학교와 중대연극영화과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신성일, 추송웅, 박근형 등과 함께 연극무대에 섰다.
 배우로서 화려한 연예계 인생을 시작한 그는 군에 입대한 후 ‘군예대’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시민회관(현 세종문화 회관)전속가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연화백은 언제부턴가 마이크 공포증으로 노래를
접어야했다.
그 이후 연 화백은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어린 시절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택했다.
연 화백은 “어린 시절 충주에서 청주로 열차 통학했다. 당시 기차엔 여학생 전용 칸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학생에게 양해를 구해 전용 칸을 이용하면서 스케치했다. ‘미인도’가 과거를 회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휴일이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스케치를 했다. 그때의 스케치 여행이 내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연 화백은 지금도 전국을 돌며
시장, 포장마차, 공연장 등을 찾아 현대의 풍속도를 화복에 담는다.
그의 그런 행위는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이 세상을 돌며, 당시 시대를 그림에 담았던 것과 비견해도 될 듯싶다.
연 화백은 “풍속화는 그 민족의 생활과 삶이 그대로 담겨있어 한국을 세계에 일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중 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연 화백의 그림은 만화적 요소가 다분하다. 실제 연 화백은 어린 시절 <코주부>로 유명한 김용환 화백의 삽화를 보고
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만화나 삽화를 그려본 적은 없다.
오로지 크로키를 통해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냈다.
김세영 씨는 “연 화백의 풍속화는 크로키를 통해 완성된다. 한결같이 순수회화의 배경과 뛰어난 필력의 크로키를 조화시켰다
 단원의 필력과 해학, 긍재의 동세와 현장시각, 혜원의 선염과 깊이가 있다.
 특히 긴박한 화면구성과 깊은 공간 감각이 연 화백 작품의 백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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